내가 생각해도 내가 많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참 해도해도
너무하다. 정신상태가 썩어 빠진 것 같다.. 하나를 하면 가끔 그 중에
한 가지를 놓치곤 한다. 요즘 빈번히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
예를 들면 씻으러 가는데 옷은 가져가고 수건은 챙겨가지 않는다거나..
뭐 그런 부분.. 조금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자기 자신의 힘을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평가하는 사람은 항상 성공에 놀라고, 그 반대로 자기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실패에 놀라게 될 것이다. -B.러셀- 아직도 조금은 허세를 부리는 것..? 자만하는 것..? 그러한 것이 내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 빼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쓸데없는 데에서 그러한 것이 발동이 되곤 한다.. 나중에 생각하면 후회하고 이불킥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장난으로 받아들여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황무지(1973) 키트와 그를 좇아 함께 도주하는 열 다섯 살 소녀 홀리의 여정은 그리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법의 추적을 피해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모험'은 그저 담담하다. 홀리와 둘이 살던 그녀의 아버지를 총으로 쏘아버린 것을 시작으로 만나는 이들.. 함께 일하던 동료를 별다른 이유 없이 쏴 버리는가 하면, '보급'을 위해 무단으로 침입한 부잣집 주인은 살려준다. 그의 행동은 예측할 만한 그 무언가를 지니고 있지 못한다. 영상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과 홀리의 담담하고 동화적인 나레이션 사이의 거리감은 키트의 예측불가능성과 어우러져 기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 긴장감은 그 둘의 도주가 끝나는 순간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홀리를 만남으로서 그가 그녀에게 집착하고, 둘의 사이를 방해하는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관계에 고팠기 때문 아니었을까. 황무지는 키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가 고팠던 그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은 황무지 뿐이었다.하지만 얼마 후 홀리마저 잃고 말았다. 확실히 오래된 영화를 다시 찾아본다는 것은 지금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자료를 찾는 것은 물론 요즘은 많은 생각들에 영화를 보며 생각에 잠기고 싶지 않아 그저 일을 마치고 난 후 여가 없이 눈을감고 누워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또다시 보고 싶더라. 흑백이어서 더 매력적이었던 작품. 나중에 기술이 좋아져도 색이 입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작품 영화 황무지
내가 처한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확신만 있어도 나는 행동으로 옮겼고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었다. -리 아이어코카- 내가 행동으로 옮긴것.. 일하는 것, 연습하는 것,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정도가 다 라고 생각한다. 근데 솔직히 그것들이 나의 생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근데도 많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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